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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7-30 06:56
쇼핑몰 없어도 그만, 이것만으로도 완벽한 여행지
 글쓴이 : 최고관리자
조회 : 118  

쇼핑몰 없어도 그만, 이것만으로도 완벽한 여행지

[조지아의 보석, 시그나기 여행2] 사랑하기 좋은 도시의 일몰
18.07.29 18:32l최종 업데이트 18.07.29 18:32l
오후 6시가 거의 다 되어서야 겨우 시그나기에 도착했다. 날은 이미 어둑어둑했고, 잔뜩 흐린 하늘에서는 빗방울이 한 두방울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바람까지 거세게 불었다. 시그나기는 별로 나를 환영할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사진에서 본 예쁜 거리와 카페들은 온데간데 없고, 거리는 텅 비어 있었다. 썰렁하고 스산했다. 내가 생각한 시그나기와 너무 달랐다. '아직 시즌이 아니어서 그런가. 비가 와서 그런가, 날이 저물어서 그런가, 다들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나? 그냥 다시 트빌리시로 돌아갈까.' 짧은 순간에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광장 입구에 택시기사들이 무리지어 있었다. 예약한 호텔 위치를 물어보기 위해 잠시 차에서 내렸다. 해발 800미터에서 불어오는 산바람이 장난이 아니었다. 호텔 주소를 보여주니 시그나기가 아니라 20킬로 더 떨어진 곳이며, 40분 정도 걸릴 것이라고 한다. 와이너리 안에 있는 대저택을 개조한 호텔로 주변 경관이 너무 멋지고 이용후기도 좋아 덜컥 예약한 호텔이었는데. 정말 난감했다. 호텔예약을 취소하고 새로 호텔을 찾아야 할 판이다. 트빌리시 택시에 이어 이번엔 호텔이 말썽이다.

시그나기, 조지아에서 가장 사랑받는 도시


큰사진보기시그나기 마을 풍경 시그나기 성에서 바라본 시그나기 마을
▲ 시그나기 마을 풍경 시그나기 성에서 바라본 시그나기 마을
ⓒ 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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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그나기에는 조지아의 다른 소도시들에 비해 게스트하우스나 호텔, 카페 등 여행자들을 위한 공간이 많은 편이다. 마을 자체가 '관광특구' 같은 곳이다.

시그나기가 조지아의 관광의 메카로 떠오른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조지아의 낙후된 작은 마을에 불과했던 시그나기는 2005년부터 마을 정비사업을 시작하였다. 새로 길을 닦고 낡은 건물과 담장들을 보수하고 새로 칠을 하였다. 오래된 집들은 카페, 레스토랑, 호텔로 개조되었고, 5성급 호텔과 카지노도 들어섰다. 그 결과 시그나기는 완벽하게 중세의 낭만적인 '사랑의 도시'로 변신하는 데 성공하였다.

큰사진보기사랑의 도시 시그나기 시그나기는 낭만적인 여행을 꿈꾸는 자들을 위한 모든 것이 있다.
▲ 사랑의 도시 시그나기 시그나기는 낭만적인 여행을 꿈꾸는 자들을 위한 모든 것이 있다.
ⓒ 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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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덮인 코카서스 산맥을 배경으로 서 있는 시그나기 마을 사진은 모든 조지아 여행책자의 앞 페이지를 장식하게 되었고, 사람들은 사진 속의 아름다운 마을을 찾아 조지아 여행을 떠나온다.

큰사진보기시그나기 마을  시그나기의 심볼같은 빨간 지붕들
▲ 시그나기 마을 시그나기의 심볼같은 빨간 지붕들
ⓒ 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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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차가 지나다녔을 법한 돌길, 붉은색 벽돌담장, 오래된 교회 첨탑과 십자가, 빨간 지붕들, 알라자니 평원이 내려다 보이는 예쁜 테라스 카페, 아기자기한 공예품들, 길게 이어지는 성벽길, 망루에서 바라보는 하얀 설산의 일몰, 게다가 맛난 와인까지. 시그나기는 낭만적인 여행을 위한 모든 요소를 갖추었다. 대단한 유적지나 관광지, 쇼핑센터가 없어도 여행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조지아에서 이렇게 여행객의 취향을 저격하는 도시는 아마 단언컨대 없을 것이다.

큰사진보기 시그나기 마을 마을 재정비 사업을 통해 조지아 관광메카로 떠오른 시그나기
▲ 시그나기 마을 마을 재정비 사업을 통해 조지아 관광메카로 떠오른 시그나기
ⓒ 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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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찾은 호텔은 시그나기의 랜드마크인 게오르기 성당과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었다. 열 걸음도 안되는 거리다. 호텔건물은 가정집을 개조한 듯 작고 아담했다. 1층에 서 너개의 객실이 있고, 지하에 주인할머니 방과 주방, 식당이 있다. 직원 없이 할머니 혼자 운영하는 호텔이다. 복도 끝에 놓인 책상이 할머니 집무실이자 리셉션이다. 방은 기대이상으로 깔끔하고 쾌적했다. 커튼이나 스탠드에서도 주인의 손길이 느껴졌다. 한 시간이나 헤맨 보람이 있었다.

큰사진보기즈벨리 우바니 호텔 한시간 헤멘 끝에 찾은 즈벨리 우바니 호텔, 게오르기 성당 바로 맞은편에 있다.
▲ 즈벨리 우바니 호텔 한시간 헤멘 끝에 찾은 즈벨리 우바니 호텔, 게오르기 성당 바로 맞은편에 있다.
ⓒ 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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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몰 장소와 식당가의 위치만 확인하고 카메라만 들고 거리로 나왔다. 사위는 이미 어둠에 잠겨 들고 있었다. 게오르기 성당에는 이미 조명이 들어와 있었다.

큰사진보기시그나기 마을의 밤 풍경 멀리 게오르기 성당이 보인다
▲ 시그나기 마을의 밤 풍경 멀리 게오르기 성당이 보인다
ⓒ 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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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그나기 성벽에서 일몰 감상하기 

성벽으로 통하는 내리막길로 들어섰다. 골목길의 집들 사이로 하얀 설산이 언뜻언뜻 눈에 들어왔다. 성벽길은 사람 한 명이 간신히 지날 수 있을 정도로 좁았다. 조심조심 성벽 길을 따라 걸었다. 바람에 날린 스카프가 나의 목을 휘감는다. 한 손에는 카메라를 들고, 한 손은 난간을 잡고 망루까지 걸어갔다. 망루에서 더 이상 앞으로 갈 수 없었다.

큰사진보기시그나기 성곽길 4.5킬로 달하는 시그나기 성. 성벽길은 한 사람이 겨우 지날 수 있을 정도로 좁다.
▲ 시그나기 성곽길 4.5킬로 달하는 시그나기 성. 성벽길은 한 사람이 겨우 지날 수 있을 정도로 좁다.
ⓒ 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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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에 카프카스산맥이 어떤 강력한 군대로 뚫을 수 없는 견고한 성처럼 딱 버티고 서 있었다. 눈 덮힌 하얀 산줄기가 강물처럼 도도하게 들판을 흐르는 듯했다. 어둠에 잠긴 산 아랫부분은 육중한 검정 실루엣으로만 보인다. 산꼭대기에는 하얀 눈에 반사된 붉은 빛이 투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산자락은 손을 뻗으면 닿을 듯 가깝게 느껴졌다. 그러나 산과 나 사이에는 드넓은 알라자니 평원이 펼쳐져 있었다.

아름다웠다. 장엄했다. 깊은 어둠속으로 잠기는 코카서스는 닿을 수 없기에 더욱 신비하게 보였다.

큰사진보기시그나기 일몰 저 멀리 눈덮인 코카서스 산맥과 알라자니 평원이 있다.
▲ 시그나기 일몰 저 멀리 눈덮인 코카서스 산맥과 알라자니 평원이 있다.
ⓒ 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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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에서 웅성웅성 사람소리가 났다. 가족 단위의 아랍계 여행객들이 유쾌한 분위기를 남기고 지나갔다. 나처럼 혼자 온 여행객도 보였다. 그녀도 한참 동안 코카서스 산맥과 알라자니의 광활한 평원을 말없이 바라보고 서 있었다. 시커먼 들녘에 노란색 등불이 켜지기 시작했다. 하늘과 땅이 뒤집혀 밤하늘의 별들이 모두 알라지나 평원으로 쏟아지고 있는 듯 했다. 입을 다물고 침묵으로 최대의 찬사를 표한다.

큰사진보기시그나기 성곽길 \완전히 어둠에 잠긴 시그나기
▲ 시그나기 성곽길 \완전히 어둠에 잠긴 시그나기
ⓒ 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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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산맥이 소코카서스 산맥이다. 카스피해에서 불어오는 뜨거운 바람을 막아준다는. 그러나 전쟁을 막아주지는 못했다.

산맥 너머에는 러시아가 커다란 곰처럼 버티고 있고, 다케스탄 자치공화국, 체첸공화국 등 러시아자치공화국들이 움크리고 있다. 에라클레 2세는 1762년 다게스탄인들이 코카서스 산맥을 넘어와 약탈을 일삼자 마을을 보호하기 위해 시그나기 성을 쌓았다고 한다. 그러나 조지아도 결국 독립을 지키지 못하고 1801년 러시아에 합병되어 버렸고, 다게스탄과 체첸 역시 19세기 말 러시아에 합병되었다.

큰사진보기시그나기의 낙조   성벽에서 바라본 알라자니 평원의 해지는 모습
▲ 시그나기의 낙조 성벽에서 바라본 알라자니 평원의 해지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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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사진보기시그나기셩벽 에라클레 2세가 다게스탄족으 침입을 막기 위해 쌓은 성이라고 전해진다.
▲ 시그나기셩벽 에라클레 2세가 다게스탄족으 침입을 막기 위해 쌓은 성이라고 전해진다.
ⓒ 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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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카서스 일대는 체첸공화국, 다게스탄공화국 등 완전한 분리독립을 요구하는 자치공화국들과 이를 용납하지 않는 러시아간의 분쟁,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간의 분쟁, 터키와 조지아간의 분쟁, 조지아내의 압하지아와 남오세티아 간의 분쟁 등이 진행 중이거나 불씨를 안고 있는 예측불허의 화약고이다.

강은 산을 넘지 못한다. 그러나 사람은 산을 넘는다. 산을 사이에 두고 서로 다른 언어로 말하고 다른 신을 믿으며 다른 방식으로 살던 사람들은 산을 넘어와 사람들을 죽이고 땅을 빼앗았다. 오래전부터 지금까지 계속되는 인간의 역사다. 높고 험난하기로 유명한 코카서스 산맥조차도 그 광기의 역사를 막지 못하고 있다.

큰사진보기시그나기 성벽 18세기에 축성된 시그나기성은 그 길이가 4.5킬로에 달한다.
▲ 시그나기 성벽 18세기에 축성된 시그나기성은 그 길이가 4.5킬로에 달한다.
ⓒ 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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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텍쥐페리는 어린왕자의 입을 빌려 '쓸쓸해지면 해지는 모습을 보는 것이 좋다'고 했는데, 해지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문득 쓸쓸해짐을 느낀다. 자연은 인간사에 아랑곳하지 않고 저토록 아름다운데, 거기서 피를 흘리며 스러져가는 인간의 모습은 참으로 쓸쓸하고 허망하기 그지 없다.

더욱 거세진 바람은 성벽을 허물기 위해 달려드는 병사의 맹렬함으로 달겨들고 있었다. 바람소리가 병사들의 아우성처럼 귓전을 때린다.

덧붙이는 글 | 2018년 4월 다녀온 조지아 여행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