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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11-18 07:11
전쟁 같았던 유라시아 횡단 후 내게 남은 것
 글쓴이 : 최고관리자
조회 : 95  

전쟁 같았던 유라시아 횡단 후 내게 남은 것

스물다섯, 폐업, 휴학, 그리고 1만4000km의 여정
18.11.17 20:50l최종 업데이트 18.11.17 20:50l
이르쿠츠크 가는 길 '슬류단카'의 어느 국도. 잠깐 같이 주행했던 이용술 선생님이 찍어주신 사진이다. 촬영 후 선생님이 싸오신 김치와 전투식량을 먹었다.
▲ 이르쿠츠크 가는 길 "슬류단카"의 어느 국도. 잠깐 같이 주행했던 이용술 선생님이 찍어주신 사진이다. 촬영 후 선생님이 싸오신 김치와 전투식량을 먹었다.
ⓒ 김화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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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진학 후 강원도 춘천시에 자리를 잡은 지 4년 째 되었을 때, 휴학계를 내고 친구들과 영상 프로덕션 창업을 했다. 언젠가 인류애로 가득 찬 다큐멘터리를 만들어보자는 의미에서 '뱅뱅클럽'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자본금이라고는 스튜디오 보증금 300만 원 뿐이었지만, 생각보다 매출이 꽤 괜찮았다. 통장 잔고와 하나 둘 매입한 고급 장비, 그리고 우상향 그래프가 달콤했다.

달콤함은 포르노처럼 더욱 자극적인 것을 원하게 만든다. 너무 달아서 쓴 맛이 느껴질 때 쯤,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았다. 건강이 나빠졌고 친구들과 멀어졌다. 그보다도 슬픈 것은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보겠다는 꿈을 잊고 살았다는 것이다. 내 나이 스물다섯 살. 청춘이 아까웠다. 그래서 오토바이로 유라시아를 횡단하며 다큐멘터리를 만들겠다는 꿈을 세웠다. 

내가 가진 것은 통학 및 출퇴근용 125cc 오토바이 한 대와 800만 원 뿐이었다. 100만 원을 들여 여행용 촬영 장비와 캠핑 용품을 구매했다. 그러나 오토바이 자가 수리를 위한 스페어 부품을 구입할 비용이 부족했고, 성능 좋은 카메라가 필요했다.

그래서 오토바이를 구입했던 SYM사에 무작정 사업 제안서를 보냈다. 각종 SNS를 통해 브랜드 및 오토바이의 성능을 홍보하고, 모든 콘텐츠의 저작권을 넘기겠다는 내용을 담았다. DSLR은 강원대학교에서 지원을 받았고, 5월 20일, 드디어 블라디보스톡행 페리에 올랐다.

마침내 유라시아... 좋았냐고? 매일 전쟁이었다 
 
조지아 카즈베기 산맥 러시아에서 군인들에게 돈을 뺏겼다. 몸과 마음이 너무나도 지쳤다. 그 때 보았던 카즈베기 산맥. 눈물이 날 것 같았다.
▲ 조지아 카즈베기 산맥 러시아에서 군인들에게 돈을 뺏겼다. 몸과 마음이 너무나도 지쳤다. 그 때 보았던 카즈베기 산맥. 눈물이 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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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아의 카즈베기 산맥 조지아에서 본 카즈베기 산맥
▲ 조지아의 카즈베기 산맥 조지아에서 본 카즈베기 산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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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그리 순탄치 않았다. 고백하건대 시베리아의 침엽수림 속에서 모닥불을 피우고, 쏟아질듯한 별 아래에서 잠이 드는 로망을 꿈꿨다. 그러나 극심한 일교차는 강력한 감기 바이러스를 만들었고, 살이 15kg이나 빠지기도 했다. 러시아 남서쪽 볼고그라드에서는 횡단을 포기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고자 비행기 표를 예매했다. 서러움에 수도 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만4000km를 완주할 수 있었던 건, 세상을 헤쳐 나갈 용기를 얻기 위함이었다.

여행은 80일 만에 14개국 1만4000km를 횡단하며 끝이 났다. 80일 동안 매일같이 전쟁을 치렀다. 무언가를 노리고 접근하는 이들과의 전쟁. 시간과의 전쟁. 굶주림과 싸워 이겨야 하는 배고픔과의 전쟁. 그리고, 포기하라는 달콤한 말을 하는 나와의 전쟁.
 
벨로고르스크 라이더 러시아에서는 라이더를 '모토 브라뜨 (мотобрат)'라고 부른다. 오토바이 형제라는 뜻이다. 그들은 울프를 고쳐주고서 이렇게 말했다. '형제에게는 돈을 받지 않아!'
▲ 벨로고르스크 라이더 러시아에서는 라이더를 "모토 브라뜨 (мотобрат)"라고 부른다. 오토바이 형제라는 뜻이다. 그들은 울프를 고쳐주고서 이렇게 말했다. "형제에게는 돈을 받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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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의 형제들 엔진오일을 갈아야 했는데, 바이크 샵을 찾다보니 벨기에 샤를루아까지 가버렸다. 그곳에서 만난 'Performance Bike' 팀. 벨기에가 내게 주는 선물이라며 엔진오일 교체 및 경정비를 모두 무료로 해줬다. 한국에 무사히 도착했다는 연락만 달라고. 그거면 됐다고.
▲ 벨기에의 형제들 엔진오일을 갈아야 했는데, 바이크 샵을 찾다보니 벨기에 샤를루아까지 가버렸다. 그곳에서 만난 "Performance Bike" 팀. 벨기에가 내게 주는 선물이라며 엔진오일 교체 및 경정비를 모두 무료로 해줬다. 한국에 무사히 도착했다는 연락만 달라고. 그거면 됐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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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강, 그리고 에펠탑 에펠탑을 보는 게 평생의 소원이었다. 그러나 내 카메라를 훔쳐가려던 난민들에게 최루가스를 맞고 난투를 벌이느라 시간을 많이 허비해버렸다. 해가 지기 전에 급히 찍은 에펠탑의 사진.
▲ 센강, 그리고 에펠탑 에펠탑을 보는 게 평생의 소원이었다. 그러나 내 카메라를 훔쳐가려던 난민들에게 최루가스를 맞고 난투를 벌이느라 시간을 많이 허비해버렸다. 해가 지기 전에 급히 찍은 에펠탑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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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여정을 녹화해둔 스마트폰은 프랑스에서 영면(永眠)했다. 비록 다큐멘터리를 만들겠다는 꿈은 실패했지만, DSLR에 담긴 사진과 더불어 큰 결과물을 얻어 왔다. 바로 자신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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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엔 강원 KBS 라디오에서 생방송 녹음을 했다. 한 달 전에는 춘천 지역 월간지 <봄내>에서 인터뷰를 했다. 이런 주목이 낯설지만, 누군가에게 용기를 불어넣을 수 있다는 게 뿌듯하기만 하다. 그나저나 '요즘 청년들에게 힘든 일이 많이 일어나는데, 걱정은 없냐'는 질문에 이런 대답을 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제가 유라시아를 횡단한 사람입니다. 뭔들 못하겠습니까?"